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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기장

열병..일까.

외돌토리 2006. 6. 18. 02:26

마치, 가슴팍을 예리한 면도날로 그어 시린 상처에서 흘러 나온 뜨겁고 비린 피가 온 몸을 적신 듯. 온 몸에서 열이 나고, 머리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건드리기만 하면 아프다. 단순한 감기? 글쎄, 감기랑은 워낙 친하질 못해서 감기 때문에 앓아 눕는다는 건 지금까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거늘. 별다른 감기 증상도 없고 말이지. 식욕 제로. 의욕 제로. 활력 제로. 그저 하루 온종일 몰려오는 잠에 취해 살 뿐.

오히려, 사춘기 소년의 시절이 훨씬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.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사랑이란 단어에 가슴 두근거리기엔 고려해야 할 게 너무나 많아져 버렸으니까. 내가 너무 모자라서 섣불리 나서지도 못하는 게 너무 짜증이 나. 차라리, 말도 안 되는 연애소설의 주인공처럼 주둥일 나불대는 놈들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. 그런 오만한 자신감 같은 게 지금 내게 있다면 마음은 편할텐데 말이지. 미래가 불투명한 건 다 똑같은데 나만 조바심에 안절부절 못하는 게 너무 바보같고 우습잖아.

온 몸에 거칠게 새겨진 네 이름들이 아물고 열이 내리면,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, 아무 생각 않고 내 할 일만 할래. 아로새겨진 흉터를 안고 살다보면 혹시 알아, 멋대로 길가다 다시 만나게 될지. 그 땐 자신 있게 네게 손이라도 내밀 수 있는 지금보다 훨씬 큰 내가 되어 있으면 좋으련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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